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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공학자, 대운하를 말하다

대운하, 정치공학 말고 토목공학으로 따져보자 - 프레시안

교통의 역사를 놓고 볼 때 18세기까지를 운하의 시대, 19세기를 철도의 시대라고 한다면 20세기는 도로의 시대라 부른다.

내 말이. 미국이 전국에 걸쳐 고속도로를 놓을 때, 어디서 어디까지를 어떻게 놓아야 하는 지 말이 많았단다. 그게 1950년대의 일이고, 미국 전반의 고속도로 시스템이 완성된 건 대략 90년대 초로 본다.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그 당시 결국 고속도로망의 모양새를 결정한 건 토목기술자들이었다고들 한다. 어느 노선이 '최적'인지를 따지는 그네들의 우직한 숫자가, 계산이 서로 다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의 최소한의 합의점이 되어서였다고.

각설하고... 우리에겐 운하를 건설할 기술이야 있다. 인류에게 달에 갈 수 있는 기술이 있는 것 처럼. 사실 인류에겐 내키면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기술도 있다. 하지만 그걸 그리 자주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잘 따져볼 필요가 있더라는 것. 적어도 따져볼 수 있는 부분이라도 잘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프레시안의 기사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마침내 신중한 공학자들도 입을 열어 따지기 시작했더라는 거. 과연 토목공학은 정치공학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대운하는 그런 토목기술자/공학자들의 우려를 가볍게 불식시키고 착공될 것인가? 글쎄, 확실한 건 저네들의 언어가 먹히지 않으면, 대운하는 그냥 건설되는 것으로 알면 되겠다.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렇더라는 거다.

by 남쪽계단 | 2008/01/09 16:49 | 환경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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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땅콩샌드 at 2008/01/09 23:27
학교에서 교양 수업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걸 누군가는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유명한 대학 나오셨던데 왜 그러시는지. 유명한 대학도 못 믿겠군요.
Commented by 남쪽계단 at 2008/01/10 03:03
대학이야 상관있나요. 종교있는 양반들이 딱히 더 윤리적이란 법 없는 것 처럼, 대학나왔다고 꼭 더 많이 뭘 안다는 법은 없더라는 거죠. 모르죠. 저 양반은 정말 운하에서 미래를 보고 있을지. 경제는 역사가 아니라 미래야, 내수진작용으로 대규모 토목공사가 필요해... 그러면서.
Commented by isanghee at 2008/01/10 14:48
몇몇 공학자들의 소리없는 의견개진이 있었지만
25년 전에 이미 평화의 댐을 지은 경험이 있죠.
Commented by 남쪽계단 at 2008/01/10 15:43
말 그대로 25년 전 이야기니까요. 저런 기사가 나기도 여의치 않았던. 이번엔 어떨지 보죠.
Commented by 기술인 at 2008/02/13 16:01
"우리에겐 운하를 건설할 기술이야 있다."라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기술'이라는 것 자체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건설하는 행위' 그 자체만이 '기술'인 것이 아니고, '건설을 설계하는 것'도 '기술'이라는 것이다. 세종때 '장영실'이 '물시계를 만든 것'도 기술이지만 '물시계를 설계한 것'도 기술이라는 말이다. '설계'란 '필요'와 '효용'도 가늠해서 '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제발 '말'로써 '기술'을 논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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