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loos | Log-in


태그 : 인지과학

인지 과학과 뇌과학, 그리고 기독교

지동설이 그리스도교가 마주친 제1의 파도였다면, 진화론은 제2의 파도이며, 정신 분석학이 제3의 파도라면, 인지 과학과 뇌과학은 이제 그리스도교가 마주치는 제4의 파도가 될 것입니다. 지동설이 인간이 사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리고, 진화론이 생명 세계의 정점으로서 인간의 위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신 분석학이 무의식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다소 위축시켰지요.

아마도 이 네 번째 파도가 가장 큰 파장을 가져올 겁니다. 제4의 파도는 인간의 신 존재나 종교 경험과 구조를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신'과 '영혼' 등을 건드리기 때문이지요. 상당수의 신학자가 이 분야의 작업을 주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과학에 대한 그리스도교 관련 논의에서 중심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이제 막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 신재식, "종교는 과학을 '시녀'로 보는가?", 프레시안 에서

동감. 나도 모르게 [House M.D.]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 작고한 클라크 아저씨의 [라마와의 랑데부]에 보면 지구와 접촉하게 된 외계구조체와의 대화에서 신학논쟁이 논리적으로 반박되어 지구상의 종교가 와해된다는 언급이 잠깐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엔지니어 출신인 클라크 아저씨의 상당히 나이브한, 그리고 낙관적인 관점이란 생각을 했었다.

예를 들어 체스를 생각해 보자. 체스의 모든 가능한 수는 대략 분석이 끝난 상태라고 한다. (바둑은 아직 멀었다고. 체스는 8x8=64칸의 말판에서 싸우는 게임이지만, 바둑은 19x19줄이 교차하는 361개의 점을 다뤄야 하니까.) 달리 말하면 어떻게 첫 수를 두 건 서로 싸우면 서로 이기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는 거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체스를 두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둘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이 그 방대한 지식을 머리 속에 채워넣고 제 때 검색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니까. 틱택토 같이 성인이라면 싱겁기 짝이 없는 게임도 아이들을 위한 게임으로 계속 명맥을 유지하는 걸 보자. 체스는 그런 의미에서 경험만큼이나 '직관'의 게임이다.

설령 인지 과학과 뇌과학이 종교적 경험의 기제를 과학적으로 밝혀낸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이 그 결과에 납득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판단에 달려있다. 그리고 바로 인지 과학과 뇌과학의 최근 성과가 일단 하나의 논리에 심취한 사람의 뇌는 그 논리에 맞게 스스로를 구조화하고 그에 따라 정보를 걸러 다시 스스로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밝혀내지 않았던가. 해서 이게 '제4의 파도'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 덕분에 기독교라는 섬이 가라앉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거다. 다만 근미래에 있을 흥미로운 논의와 대화 - 라고는 하지만 꽤나 목소리를 높이는 것들이 되겠지 - 가 기다려질 뿐. 예를 들어, 인간의 뇌에서 '영적중추' - 영적 경험을 촉발하는 뇌의 부분 - 를 찾아냈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종교적 해석은 무엇일까. 이런 것들.

by 남쪽계단 | 2008/07/05 23:16 | 생각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